「草溪舊譜序」는 이전에 간행된 甲寅譜와 1742년 壬戌譜, 1802년 壬戌譜 서문을 필사한 것인데, 말미의 草溪委折이라는 글에서 密陽을 본관으로 삼은 것을 悖倫으로 언급하고 있다. 965-966)는 고려사범대학, 고려극장 등 문화기관의 책임자들과 학생들을 같은 날짜에 카자흐스탄으로 이주시킬 것을 지시하고 있는 1937년 9월 16일자 전보다. 회지의 가장 큰 특징을 나타내는 기술공부에는 온상육묘, 보리와 양파 추비법, 감자재배법, 벼농사강좌, 크리미엄의 효과와 사용방법, 재배원론 등 농업 기술이 실려 있다. 중앙문서철은 전체 문서의 약 82% 이상을 점하고 있으며 외교사가들이 가장 광범하게 이용하는 기록물이다. 1) 중앙문서철 미 국무부 기록 중 가장 방대하고 가장 중요한 범주가 바로 중앙문서철(Central File)이다. 미 국무부에서 생산되었거나 문서로 철해진 기록의 대부분은 RG 59에 수장되어 있다. 1860년 중국역사상 최초의 외교전담기구인 總理各國事務衙門이 성립된 이후 중국(중화민국) 외교자료의 대부분은 臺灣의 각 사료소장기구에 분산 소장. 외교관련 문건 가운데 총리각국사무아문(1860-1901), 청말 외무부(1901-1912), 북양정부 외교부(1912-1928) 檔案은 여러 경로를 거쳐 현재는 臺北 외곽의 南港에 위치한 중앙연구원 근대사연구소 당안관에 소장. 특히 인천오피 작성된 문서로서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것은 1918년 6월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서 각 지역 한인대표들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된 ‘제2회 특별전로한족대표회의’의 한글, 러시아어 공식회의록이다.
257-260)로서 우리의 특별한 관심을 끄는 것은 윤자영(회장). 강제이주와 관련하여 흥미를 끄는 문서(Fond П-2, opis’ 1, delo 1344, ll. Fond П-2에 들어있는 문서(opis’ 1, delo 458, ll. 약 68 Box 분량의 문서 중에서 한국전쟁 관련 자료는 Box 17-22, 32, 36, 43-46에 보관되어 있다. 문서 작성시기가 명기되어 있지 않은 점이 아쉽다. 중화민국시기에 생산된 외교부당안 가운데 보존기한이 지나지 않은 당안자료와 기밀자료는 臺北 외곽의 北投에 위치한 外交部檔案庫에 별도로 수장. 2) 오성월, 김법린, 동광선사 등의 유품 관련자료 수집 한국 근현대 불교사의 중요 인물들인 오성월, 김법린 등은 불교사적 중요도에 비해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편이다. 1) 2007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창원 지역사 자료 조사 수집 사업 2007년 사업에서는 동읍, 북면, 대산면 지역과 옛 창원읍 지구인 의창동, 팔룡동, 명곡동, 봉림동, 반송동 등 5개 동 지역을 조사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 2002년 한국사 사료 조사 수집 지원 사업으로 간접수집하였다. 1958년 民政廳, 1997년 7월 文化處에 예속되었던 대만성문헌위원회는 1999년 7월 대만성정부에 직속되었다가 2002년 1월 1일자로 국사관에 예속되어‘國史館臺灣文獻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2차대전 종전 후 대만을 접수한 중화민국정부는 臺灣省通志 편찬을 위해 1948년 6월 1일 臺灣省通志館을 성립하였다. Ⅱ. 密陽卞氏 가와 訴訟 자료 밀양변씨 가의 자료는 賣買明文과 所志 등 訴訟 관련 자료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성립 다음해인 1949년 7월 대만성통지관은 臺灣省文獻委員會로 개조되었으며 이 기구는 문헌연구 외에도 編纂組, 採集組 및 整理組를 두고 대만관련 문헌사료의 채집, 정리, 수장, 문헌서간의 출판 및 史志의 纂修 등 업무를 담당하였다. 국사관대만문헌관 소장 중요 자료는 臺灣總督府檔案, 臺灣總督府專賣局檔案, 臺灣拓殖株式會社檔案, 臺灣省行政長官公署檔案, 臺灣省級機關檔案, 臺灣鹽業檔案 등으로 일제시기 대만의 사회· 칠원향교 소장 고전적을 통하여 조선후기 이래 한말에 이르기까지 향교가 교육과 향사의 기능을 지속하면서 지방사회의 구심점으로 역할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볼 수 있다. 조사에는 홍재휴(전 대구카돌릭대학 박물관장), 김학모(향토사연구소 소장), 권대진(문경시 노인회 회장), 김병옥(문경시 인터넷뉴스 보도국장), 안태현(문경시 옛길박물관 학예사) 등이 참여했다. 아울러 문중 조직과 관련된 것으로 門案, 四宗契案, 奉先契案 등이 있으며, 또, 예조에서 최치원의 후손들에게 잡역을 면제한다는 인증서인 禮府謄給이 있다. 그는 여말 선초 官學 중심의 학풍을 대표하는 학자로 전후 20여년 동안 대제학을 지낸 것으로 전한다.
또한 Fond П-442의 문서들은 볼셰비키 하바로프스크 시당위원회 서기와 하바로프스크 소비에트 외무위원을 지낸 최초의 한인공산주의자 김 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1885-1918)에 대한 채마리아 페트르바나, 김마트베이 등의 기록 등이 포함되어있고, 상해파 고려공산당의 핵심간부로서 이동휘의 측근이기도 했던 김아파나시와 관련된 문서들을 다루고 있으며, Fond 58, Fond 99, Fond 137, Fond 353, Fond 768의 문서들은 거의 20년대 자료들로서, 한인의 사회주의 건설 참여, 교육, 농업, 토지이용, 출판, 하바로프스크 지역별 정착한인수, 당국의 한인 지역배치, 거주증 및 시민권취득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1930년대 문서들은 스탈린에 의한 강제이주 이전까지 한인들의 토지이용문제, 한인 노동력 문제, 한인사회주의자들간의 파벌투쟁문제, 강제이주를 전후로 한인들에 대한 부동산 배상과 인력배치문제, 한인이주와 관련한 당국의 전문과 조치, 이주열차, 고려사범대학과 고려극장, 한글신문 ‘선봉’ 기사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Fond П-2의 문서들 이외에, Fond П-30, Fond П-35와 Fond П-44의 문서들 또한 각각 강제이주와 20년대 한인공산주의자 파벌들 간의 논쟁과 투쟁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Fond 1718에는 1930년, 1931년에 작성된 극동각지역의 지도들이 들어 있다. 이 회의록은 종래 연구자들이 활용해온 일본어 번역본에 비하여 새로운 내용이 들어있고, 여러 중요한 쟁점들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다. 이 기록물은 특정 행정기구· 1906년부터 중앙문서철을 위해 고안된 숫자분류체제에 따라 특정 주제· 조직단위 혹은 특정 주제· 이들 문서는 출발시점, 출발지점, 인원수 등 구체적인 이주방법과 상실한 재산에 대한 보상방법 등이 명시하고 있다. Fond 304에 포함된 두 문서는 1929-1933년에 걸쳐 소련당국이 계획했던 한인들의 하바로브스크지방으로의 이주 5개년계획에 관한 것으로 강제이주전에 극동지방 행정당국이 한인들의 자발적인 이주를 시도한 것으로서 주목해야할 문건이다.